스완상 심사위원들은 최영규를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의 세계를 아주 쉽게 오가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안무가들의 작품에서 빛을 발한다.”고 평했다. '다양성'과 '다재다능함'은 발레단 관계자들도 공통으로 꼽는 최영규의 장점이다. 발레 무용수들이 클래식 발레와 모던 발레를 모두 소화할 수 있지만 보통은 한쪽에 더 강점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영규처럼 두 스타일을 똑같이 잘해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DNB는 클래식부터 모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레퍼토리를 소화하는 발레단으로 유명해서, 이례적인 다양성을 가진 최영규는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찾아 입은 것일지도 모른다.
“제 생각엔 결국 클래식이나 모던이나 몸을 움직이는 건 똑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몸을 움직이는 것에 있어서 어떻게 하면 더 자유로울까 연구하는 거죠. 몸의 움직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을 때 감정표현도 작품에 따라서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인지 작품이나 안무가의 스타일에 대한 특별한 선호가 없다고 한다. “한국에선 거의 클래식 발레만 했어요. 네덜란드에 와서는 모던이나 네오클래식 작품도 하게 됐고, 세계적인 안무가들과 함께 작업할 기회가 많아서 새로운 춤을 접하게 된 거죠. 물론 공연이 끝나고 더 마음에 남는 작품이 있긴 하지만, 일단 새로운 작품을 하거나 새로운 안무가와 일하는 걸 좋아해요. 몸을 움직이는 새로운 방식을 배울 수 있잖아요. 뭔가 새로운 느낌을 계속 저한테 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최근 몇 년간 더 많은 동시대 안무가들과 작업을 하며 최영규는 확실히 더 성장했다. 유럽 무용계에서 저명한 안무가 한스 반 마넨(Hans van Manen), 토르 반 샤크(Toer van Schayk)와의 작업이 대표적이다. 2022년 스완상을 안겨준 〈7th Symphony〉 역시 모던 발레 작품이다. “저희 발레단 상임안무가 토르 반 샤크가 인생에서 겪은 감정을 토대로 만든 작품이에요. 특히 2장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랑을 만나서 떠나고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혼자가 되고, 그런 여러 감정이 많이 담긴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새로운 클래식 〈레이몬다〉
80여명의 단원이 연간 100회 이상의 정기 공연을 소화하는 대형 발레단 DNB의 공연 스케줄은 바쁘게 돌아간다. 매일 저녁 〈지젤〉이 무대에 오르던 10월 중순부터 이미 12월 공연인 〈레이몬다〉 의상 피팅이 진행 중이었다. DNB가 새롭게 만들어 2022년 초연한 〈레이몬다〉는 최영규의 최근 대표작 중 하나다.
고전 작품의 보석 같은 안무들을 살리면서도 스토리나 캐릭터를 조금씩 수정해 현대적 감수성에 맞게 작품을 공연하는 것이 DNB의 방식이다. 〈레이몬다〉도 마리우스 프티파(Marius Petipa)의 1898년 기존 안무에 레이첼 보장의 새로운 해석과 안무를 가미해 만들었다. 레이몬다를 납치하는 '나쁜 이슬람인'(압드라흐만)과 결국 그녀를 구해내는 '백인 구원자'(장 드 브뤼앙)의 구도에서 벗어나 레이몬다가 자신의 운명을 책임지고 함께할 남자를 선택하는 이야기로 바꾸면서 스토리 라인과 남자 주인공도 바뀌었다.
13년 경력에서 하이라이트를 하나만 꼽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최영규는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레이몬다〉를 꼽았다. “코로나 팬데믹 때부터 2년 동안 준비한 작품이거든요. 저희 발레단이 새로 안무를 하고 무대나 의상 디자인까지 모든 걸 새로 만들어 올린 작품인데, 제가 처음 창작 단계부터 같이 해서 그런지 더 애정이 가요. 연습기간도 길었고요.” 스토리가 바뀌면서 작품 후반의 파드되는 완전한 창작이 필요했고, 안무가 레이첼 보장은 최영규에게 많은 영감을 얻었다.
“〈레이몬다〉를 만들 때 최영규와 마이아 마카텔리(Maia Makhateli)가 저의 첫 캐스팅이었습니다. 영규는 클래식 레퍼토리의 모든 베리에이션을 출 수 있는 최고의 무용수이고, 〈레이몬다〉 후반부 파드되를 창작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그가 여러 가지 제안을 하기도 했고, 저는 이 작품을 두 사람과 함께 만들었죠. 시간이 지나도 이 작품은 다시 돌아올 것이고, 최영규는 항상 저의 첫 번째 압드라흐만일 것입니다.” (레이첼 보장)
한번 시작하여 멈추지 않은 길
최영규가 발레를 시작한 것은 8살 때였다. “첫 수업이 아직도 기억나는 게, 발레 타이즈 때문에 발레 배우기 싫어서 제가 의자에서 자는 척을 했어요. 선생님이 깨우다가 안 되니까 저를 탈의실에 넣어주고 그렇게 저는 첫 수업을 안 들었죠. 근데 두 번째, 세 번째 수업부터는 그냥 음악에 맞춰서 몸을 움직이는 게 좋아서 금방 빠져들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그냥 지금까지 쭉 이어졌죠. '내가 왜 이걸 하지?' 그런 고민조차 안 하고 자연스럽게 계속했어요.”
12살에는 한예종 예비학교(현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 들어갔다. 발레를 기초부터 정확하게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수업량도 많아서 어린 발레리노에겐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중학교 졸업 후엔 무용원 김선희 교수의 추천으로 스위스의 취리히 탄츠 아카데미(Tanz Akademie Zürich)에서 2년간 유학했다. 처음엔 영어나 독일어를 전혀 못 해서 6개월간 거의 말없이 혼자 지냈다고 한다. “정말 처음으로 느껴보는 외로움이었어요. 주변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도 없고 모든 게 새롭고 힘들고 무섭고. 그래도 발레는 언어가 필요 없으니까 발레할 때만큼은 즐겁게 했던 것 같아요. 그게 끝나고 집에 오면 다시 혼자고, 힘들고. 근데 다음날 되면 또 발레를 할 수 있어서 괜찮고.”
취리히 아카데미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선택한 것은 무용원 영재입학이었다. 예비학교 수업을 받던 서초캠퍼스로 다시 돌아온 셈이었다. “무용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 긴장감이요. 처음에 들어갔을 때 러시아 선생님들과 김선희 원장님 수업을 많이 들었는데, 정확하게 배워야 하니까 조금만 틀려도 다시 해야 했거든요. 그 긴장감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다른 분들이 말씀해 주시는 것처럼 저도 제 강점이 클래식 발레에도 강하면서 다른 많은 장르를 소화해 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밑거름이 된 게 한예종 예비학교와 무용원에서의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기본기도 정말 깨끗하게 배웠고, 그래서 나이에 비해 테크닉이 좋았던 게 제 길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취리히 아카데미나 무용원에 있을 때 해외 콩쿠르도 나가고 수상도 했는데, 나중에 DNB 입단하고 나서 테드 단장님이 그때 이미 너를 인상 깊게 봤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관객의 마음에 많은 것을 남기는 예술가
“최영규는 파워, 춤, 턴, 점프, 예술성, 모든 면에서 최고의 기량에 도달했어요. 그는 우리 발레단의 큰 자산이고, 우리는 그에게 외부 공연에 참여할 자유를 주는데 그때마다 언제나 더 많은 공연 기술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발레 마스터로서 꽤 완성된 예술가인 그를 지켜보는 일은 즐거워요.” (기욤 그리핀 Guillaume Graffin, 발레마스터)
그는 이제 정점에 오른 테크닉을 바탕으로 무대 위에서 예술적으로 깊어지고 풍부해지고 있다. 평소 공연 리뷰를 찾아보는 편은 아니지만, “무언가 마음에 느껴지는 것이 많은 무용수다”라는 문장은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제가 춤을 출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런 부분이어서 그런 얘기를 들으니 좋았어요.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용수가 되는 게 제가 처음 발레를 시작했을 때부터의 목표기도했고요. 저는 제가 무대 위에서 무언가 느끼는 그 순간에 관객도 똑같이 느낀다고 생각해요. 제가 더 깊게 빠져들수록 관객들도 전달받는 것 같아요.”
테드 브랜슨 역시 바로 그 점을 최영규의 장점으로 꼽는다.
“그는 무대에서 가짜로 어떤 '척'을 하지 않아요. 관객으로서 당신은 무대 위의 그의 감정이 진짜라는 걸 느낄 겁니다. 그가 무대에서 행복할 때 관객도 그걸 진짜라고 느끼고 그가 무대 위에서 절망할 때 역시 진짜라고 느끼죠. 그리고 그런 감정 표현이 훌륭한 테크닉과 결합되어 있고요. 대단한 일입니다.” (테드 브랜슨)
“무대에 설 때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도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그 순간 제 느낌대로 움직이게 되거나 어떤 감정이 느껴질 때, 음악과 하나가 되는 경험이 너무 좋아요. 제일 최근에는 〈지젤〉에서 지젤이 마지막으로 건네준 꽃을 들고 제가 무대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 막이 닫히는 그 순간이 기억에 남네요. 그 무대에서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평생 떠나보내는 마음이 들었어요. 가슴이 무겁고 애틋하고 고마운 느낌.”
한국 무대에 대한 그리움은 없었을까. “일단 제 고국이고 가족들이 있으니까, 한국에서 공연하면 특별한 느낌이 있죠. 거의 매년 한국에서 공연했었는데 최근 3년간은 못 갔어요. 코로나 영향이 컸죠.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한 공연이 유니버설발레단 30주년 갈라 공연이었는데 코로나 팬데믹 막 시작될 때라 객석에 마스크 쓰신 분들도 있었고, 그 공연 이틀 뒤 갑자기 봉쇄가 시작됐거든요. 그 후로 한 2년간은 외부 공연도 못 했죠. 그때 제 파트너가 유니버설발레단의 홍향기 발레리나였어요. 한예종 예비학교에서부터 같이 춤을 배웠던 사이인데 이렇게 성장해서 같이 무대를 서는 것도 되게 특별했던 경험이었어요.”
좋아하는 건 계속할 수밖에
춤을 계속 추게 만드는 동력에 대해 묻자 “제일 좋아하는 거라서요. 좋아하는 건 계속할 수밖에 없죠”라는 담백한 답변이 돌아온다. 발레에 대한 그의 애정을 가늠하다보면 무언가에 깊이 빠져드는 것도 재능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제가 원래 무언가에 잘 질리거든요. 집요함이 있다고 했는데, 뭔가 하나에 빠지면 거기 깊숙이 들어가서 깊은 곳까지 파내고, 대충 알게 되면 빠져나와요. 근데 발레는 끝이 없어요. 뭔가 새로운 게 계속 발견되고, 그래서 노력하고, 그렇게 무대에 섰을 때 또 엄청난 감동이 있고. 근데 그다음 날 되면 또다시 시작이고. 그래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네덜란드에 정착한 13년의 세월에 대해서는 “밭을 일궜죠”라고 표현하며 웃는다. “이젠 되게 편안한 것 같아요. 모든 게 안정감이 느껴지고 발레에 계속 집중할 수 있어요.” 그의 춤도 일상도 이런 안정감을 얻기까지 치열하게 쌓아올린 시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관객으로서 우리는, 무대를 통해 그 최고의 결과물만을 확인할 뿐이다.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배웠고, 경험도 쌓고, 그러다가 주역도 맡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이렇게 매일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은 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수록 보는 눈이 많아지고 또 그걸 본보기로 삼고 열심히 하는 후배들도 있어서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다음 세대가 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싶어요.”
글 김윤영 | 영상 최유진